소박하고, 간결한 일상

무언가를 가꾼다는 건 본문

시골에 살고 있어요

무언가를 가꾼다는 건

함스타 2021. 4. 19. 10:11
728x90

시골의 봄은 언제나 분주하다.

 

트랙터로 밭을 고르고 도랑을 파 작물을 심는다.

 

소규모 밭들은 이렇게 벌써 작물을 심었다. 저건 마늘인데 마늘밭을 지나가면 마늘냄새가 코를 찌른다.

 

초보 시골살이 중인 나는 작게 텃밭을 한번 해보려 오이모종을 구입했다.

평소에 별이 때문에 오이를 자주 구매하는데 별이에게 친환경 오이를 선물해주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구입.

 

 

기존에 키우던 페퍼민트를 정리하고 그 흙에 배양토와 마사토를 섞어 오이 모종을 심었다.

 

총 10주. 무럭무럭 자라 별이에게 친환경 오이를 선물할 수 있길 정말정말 간절히 소원해본다.

 

 

봄은 튤립의 계절이던가. 시골에서도 튤립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동네 꽃집에서 득템 했다.

꽃집 사장님 왈 튤립이 지면 구근에서 최대한 가까이 줄기를 제거하고 다시 심으면 또 튤립이 발아한다나?

 

그래서 해보기로.

 

햇빛을 향해 꽃잎을 이리저리 펼치던 나의 첫 튤립은 저렇게 졌다.

 

튤립 줄기를 제거하고 구근 뿌리에 뭉쳐있던 흙을 가볍게 털어준 후 다시 심었다.

아주 간단히.

 

 

요즘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홍콩야자.

작년 여름에 코스트코에서 3만원에 사왔는데 기나긴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4줄기 정도가 썩고 저 두 줄기만 살아남았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자고 일어나면 새순이 돋아있다.

 

쑥쑥 자라고 있는 애들을 보니 물꽂이를 한번 해볼까 하는 악마의 유혹이 ㅎㅎ (지금까지 한번도 물꽂이에 성공해본적이 없음...)

 

줄기를 잘라 유리컵에 넣고 햇빛이 없는 곳에 두었다. 길게는 한달정도 걸린다고 하니 부디 홍콩야자 물꽂이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키운다는건 어떤 것일까?

 

화창한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그 어떤 날에도 식물과 동물을 키우는건 나를 좀 더 나은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마치 서로 살아있음에 대해 이야기 하듯이.

 

내 삶이 정체된것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을때 이 자라남이 더딘 생명들에게 깊은 위로를 받는다.

 

마치 나에게,

지금은 잠깐 비를 맞고 있는거야,

빨리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눈에 잘 보이진 않겠지만 자라고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새잎이 돋아나고 뿌리를 내리는 것 처럼 나도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자라고 있겠지.

 

어릴때 엄마가 왜 저렇게 홈가드닝에 시간과 애정을 쏟을까 의아했던적이 있다.

집에 화분이 많으면 벌레도 쉽게 꼬이고 때때로 화분위치도 바꿔주어야 하고 일조량도 신경써주어야 하는 '그 번거로운일' 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30대 중반이 되니 이해된다.

 

엄마는 아마도 애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며 본인의 삶이 깊은 웅덩이에 빠진것처럼 정체되어 있음을느꼈을 수도.

 

그 정체되어 있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더디지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가꾸며 위안을 받고 계셨을 것 같다.

 

10,20대때 나는 분명 어른스러운 아이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는걸 요즘 깨닫는다.

 

엄마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던 홈가드닝이 이젠 나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지금은 잠깐 비를 맞고 있는거야, 빨리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나는 분명 자라나고 있어 라고.

 

+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어요 :D

https://www.youtube.com/watch?v=yJ2fa6R3JiA

 

728x90